500년 전엔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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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너무도 온순하고 적게 먹는 동물이었는데, 

이제는 사람까지 잡아먹을 만큼 탐욕스럽고 사나워져서 

들판과 집과 마을까지 모두 삼켜버린다고 합니다."

—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1516년



중세 잉글랜드의 전형적 농촌 풍경은 "개방경지제(open field system)"였다. 


중세 영국에는 공유지(커먼즈, Commons)가 있었다. 

우리로 치면 조선시대 동네 뒷산 같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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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전형적인 중세 영국의 농지 구조)


마을 주변에 거대한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이것이 좁고 긴 띠 모양(strips)으로 나뉘어 마을 농민들에게 분배되었다. 

수확 후에는 공동으로 가축을 방목했으며, 마을 외곽의 숲·황무지·습지·방목지는 공유지로서 

누구나 땔감을 구하고, 가축을 먹이고, 사냥하고, 약초를 채취할 수 있었다. 


이 공유지는 영주의 형식적 소유였지만, 관습법상 촌민들에게 이용권(common rights)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수백년간 큰 변화가 없던 세상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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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현 벨기에)와 이탈리아 모직물 산업이 성장하면서 

영국산 양모 수요가 폭증했고, 양모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아직도 양모코인 탑승 안한 흑우 젠트리 없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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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세상에 존재하는 Sheep Coin)


 지주들은 곡물 경작보다 양 방목이 훨씬 더 많은 이윤을 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주들은 공유지와 소작지를 한꺼번에 울타리 쳐 거대한 목장으로 바꾸고, 

수백 명의 농민을 쫓아내면서도 단지 양치기 몇 명만 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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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Nano Banana, The Tragedy of the Commons: The Expulsion of Serfs, 2026, PNG]


토마스 모어가 유명한 저서인 유토피아에서 비판한 것도 이러한 현상이었다. 


이 시기 이렇게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고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던 현상을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라고 한다. 

인클로저는 주로 지주의 일방적 행위였고, 때때로 왕실 칙령이나 소송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수익성이 낮은 산업이 수익성이 높은 산업으로 대체되었는데, 뭐가 달라졌을까. 



<농업 생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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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Nano Banana, The Joy of the Enclosure, 2026, PNG]


 인클로저는 농업 생산성 자체는 상당히 끌어올렸다. 

통합된 대규모 농장에서는 노퍽 4포식 윤작, 개량 품종, 울타리·배수 시설 투자가 가능했고, 

18~19세기 영국 농업생산량은 인구 증가율을 앞지르며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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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Nano Banana, Industrialization, 2026, PNG]


그 결과 영국은 대규모 도시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고, 이것이 다시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생산성 증대의 과실은 소수 지주와 자본가 계급이 대부분을 가져갔다. 



<쫓겨난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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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인클로저 운동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한 농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공유지 이용권을 잃은 영세농·오두막 거주민(cottagers)·무토지 농민은 생계 기반을 완전히 상실했다. 

공유지에서 채집·가축 사육·약초 지식·산파 기술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자율성을 누리던 여성들이, 

인클로저 이후 이 모든 자원을 잃고 남성 임금에 의존하는 가내 노동자로 전락했다고 분석하는 연구도 있다. 


과거에는 작은 텃밭 하나, 공유지에서 기르는 소 한 마리, 숲에서 구하는 땔감만 있어도 최소한의 자급자족이 가능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화폐를 주고 사야 하는 상품이 되었다.


이들은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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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향에 남아 소수 대지주의 농업 임금노동자가 되거나, 

(b) 맨체스터·리버풀·버밍엄 같은 신흥 공업도시로 이주해 공장 노동자가 되는 길이었다.


두 선택지 모두 자영농이던 시절에 비해서 좋지는 않았고, 당연히 많은 농민 저항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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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트의 반란(Kett's Rebellion, 1549) -

노퍽에서 로버트 케트 주도로 약 1만 6천 명의 농민이 봉기, 인클로저 울타리를 허물었으나 진압되고 케트는 처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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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스윙 폭동(Swing Riots, 1830) - 

농업 기계화와 저임금에 항의한 남부 잉글랜드 농민 봉기


이 저항들은 모두 진압되었지만, 이후 차티스트 운동·노동조합 운동·사회주의 사상의 이념적 뿌리가 된다.




- 2026년 - 


인클로저 운동 이후 500년이 지났고, 

양이 사람을 잡아먹던 시대도 교과서에나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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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Nano Banana, AI Enclosure, 2026, PNG]


AI에 의한 21세기 인클로저 운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관련 논문 : Artificial intelligence as the common: Cognitive capitalism, enclosure and the crisis of property

(공유재로서의 인공지능: 인지 자본주의, 인클로저, 그리고 소유권의 위기)


중세에 더 생산성이 높은 양떼가 사람을 몰아냈다면, 

현대도 더 생산성이 높은 AI가 사람을 몰아내지 말란 법이 없다. 


양떼가 공유지를 차지한 것처럼

AI가 전력과 용수를 차지할 것이고, 우리가 놀고 일하면서 만든 웹 상의 데이터들도 학습하면서, 

농민들이 땅을 잃고 쫓겨났듯, 그 데이터를 만든 사람들은 보상받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예 : 뉴욕타임스 vs OpenAI: "우리 기사 수백만 건을 허락 없이 학습시켰다

(뉴욕타임스·오픈AI 충돌…"챗GPT 대화 공개" vs "개인정보 침해" - ZDNet korea)


아마도 미래는 아래 둘 사이의 어딘가거나, 

우리의 위치에 따라 둘 다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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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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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500년 전엔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뭐 임마. 

댓글

아름다운 중년

건강하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