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의 서역정벌

 1.   740년대 초반초기 토번 국경 분쟁 승리

서역남로와 파미르 일대에서 부도호로 승진하기 전까지 유격장군으로 복무하며 토번군과의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했고 구체적 전과는 기록에 없지만 "數擊吐蕃皆破之(토번을 여러 번 공격하여 모두 깨뜨림)"라는 

기록을 볼때 상당한 공을 세운건 분명함. 이 공이 안서도호부 부도호로 쾌속 승진을 도움

 

2.   747년 소발률 정벌, '세계의 지붕'을 넘는 기습

소발률(현 파키스탄 일대)이 토번과 결탁해 당나라의 서역 남로 무역을 위협하자 안서도호부 정예병 1만을 이끌고 정벌함

전략초장거리 전격전과 분진합격: 과감하게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험준한 파미르 고원을 횡단하는 기습 작전을 감행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소발률의 핵심 요충지 연운보를 공격함 

당의 파미르 횡단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발률군은 말 그대로 박살남

-> 연운보를 함락시키고 5천 명을 사살여세를 몰아 소발률 수도로 진격토번 지원군 도착 전에 왕과 토번 공주를 사로잡아 항복을 받아냄토번의 서역진출 차단


3.   안서도호부 내부 반란 진압

당의 지배에 반기를 드는 서역의 작은 오아시스 도시 국가들이나 부족들의 산발적인 반란이 지속되자 안서도호부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속하게 반란들을 진압-> 타림 분지 주변 지역에 대한 당나라의 영향력을 확고히 함


4.  748년 처밀 정벌 - 서역 북로 반란 진압

서역 북로의 처밀(현 중국 신장 마나스 일대)을 정벌하기 위해 소발률 정벌때의 정예병 1만을 동원해 휴식 없이 신속하게 출병함

전략기동성을 앞세운 전격전

처밀이 방비할 틈을 주지 않고 전격적인 공격을 감행->처밀이 압도적인 무력 앞에 곧바로 항복


5.    749년 호탄왕국, 토번 연합군 정벌

갈서역 남로의 요충지인 호탄의 국왕이 토번과 내통하자, 갈라록을 치는 동시에 병력을 나눠 호탄으로 진격함

전략: 예상 밖의 속도로 오아시스 방어거점을 우회하여 기습

->이 전투에서 고선지는 호탄군은 물론, 이들을 도우러 온 토번 연합군까지 완전히 갈아버림. 이후 사로잡은 호탄 국왕과 토번군 사령부를 모두 처형하는 강경책을 씀


6.    749년 갈라록 정벌

갈라록(현 카자흐스탄 동부 일대)은 당과 토번 사이에서 기회를 엿보며 내통함

->고선지는 대규모 정벌 이전에도 갈라록 부족들과의 크고 작은 무력 충돌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통제 하에 두고 갈라록을 고립시킨뒤, 정예병 1만 명+안서4진 서역국가들에서 추가징발해 갈라록으로 출격함

전략기동전과 예상 못한 험로로 전격전

고선지는 갈라록의 천산산맥의 험난한 고개들을 넘어 갈라록의 본거지인 이리강 유역으로 진격->예상치 못한 타이밍과 장소에서 나타난 고선지군에 갈라록은 우왕좌왕하다 수천 명이 사살당함-> 갈라록 굴복서역 중앙부 장악


7.    750년 석국정벌

석국(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이 무역로를 방해하자 고선지는 석국 정벌 안서도호부 정예병 및 서역에서 징발한 군대 수만을 이끌고 공격함

전략위장 평화 후 기습:

석국 왕에게 평화 협상을 위장하여 안심시킨 뒤기습 공격을 석국 수도를 함락시킴-> 약탈로 군을 위로하고 수천 명의 주민을 포로로 잡았으며석국 왕을 장안으로 압송해 처형시킴

문제는 이때의 고선지의 잔인한 점령 방식이 서역 제국의 반발을 불렀고 석국 왕의 아들이 도망쳐 압바스 왕조에 구원을 요청하면서 탈라스 전투의 도화선이 됨


8.    751년 탈라스 전투 이슬람과의 대충돌, 첫 패배

석국 정벌에 겁먹은 서역 국가들이 아바스 왕조와 연합하여 당에 대항하자 고선지는 이슬람 세력의 동진을 저지하기 위해 탈라스 강으로 출병

문제는 병력 규모인데고선지군은 안서도호부 정예병 2만 명 + 갈라록 동맹군 수만 명 이나 아바스는 이슬람 정규군 및 서역 연합군 포함 수십만으로 압도당할 규모였음.  

탈라스 강 대치: 양군은 탈라스 강(현 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 접경)에서 5일간 치열하게 전투함전투 5일째매수된 갈라록 동맹군이 배신하여 당군의 후방을 공격하자 후방 공격으로 당군은 혼란에 빠졌고이슬람 군대의 파상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괴멸고선지는 간신히 탈출함

후대엔 의미가 큰 전투지만 그 당시의 당 조정은 변경의 1패에 별 관심도 없었기에 별 처벌을 받지 않음


image.png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의 정벌 군공

고선지의 점령지인데, 한나라때 대완국까지 서역정벌한 이광리나 후한의 명장 반초의 기록을 드디어 깨고 당나라

가 한족 왕조 군사력 원탑으로 각인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함. 

고구려 멸망 직후의 유민 출신이다보니 '고구려가 안망했다면 어떤 활약을 했을까' 싶은 상상도 들고, 지들이 멸망시

킨 나라의 유민에게도 능력만 되면 독자적 지휘권과 전선 하나를 아예 맡겨 버리는 당나라 시스템도 대단하다 싶음.

물론, 최후는 다들 알다싶이 모함을 받고 처형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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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중년

건강하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