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멸망

1453년
기원전 753년에 시작된 로마는, 1453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남아 있던 제국의 모습은 초라했다.
잦은 내전과 오스만 제국의 압박 속에서 영토는 끊임없이 줄어들었고,
이제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그 주변, 그리고 일부 그리스 지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서방의 지원군마저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참패하며,
제국은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1451년,
오스만 제국에서는 무라트 2세의 뒤를 이어 메흐메트 2세가 즉위하였다.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그것은 곧 로마 제국의 멸망이었다.
메히메트 2세가 즉위한 지 2년 후, 1453년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향해 진군했다.
공성전에 동원된 병력은 약 8만에서 10만 명, 그중에는 정예 보병인 예니체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헝가리 출신 기술자 우르반이 제작한 거대한 공성포까지 더해졌다.
이처럼 막대한 전력이 투입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수비 병력은 약 7천 명에 불과했다.
그중 5천 명은 급히 동원된 병사였고, 나머지 2천 명은 제노바와 베네치아 등에서 온 용병들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대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병력이었지만,
그들에겐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있었다.
해자와 외벽, 기르고 내벽으로 이러지는 다층 방어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외벽은 약 12미터, 내벽은 약 5미터 높이에 달했다.
이 견고한 방어선은 수세기 동안 이어진 공방전 속에서도 거의 무너진 적이 없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난공불락의 도시로 만든 핵심이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한쪽만 육지로 이어져있고, 나머지는 바다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해상으로 접근하더라도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이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북쪽의 금각만이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노바 공화국의 함대가 지키고 있었고,
입구에는 거대한 쇠사슬이 걸려 있어 적들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었다.
공방전의 시작은 포격이었다.
오스만 제국군은 도시 외곽에 진을 치고 포격을 개시했다.
거대한 공성포가 성벽을 향해 끊임없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일부가 붕괴되더라도 수비군은 밤사이 이를 보수하며 버텨냈고,
초기의 포격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포격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오스만 제국군은 전면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견고한 성벽과 수비군의 저항에 가로막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정면 돌파가 어렵다고 판단한 오스만군은 땅굴을 파 성벽을 무너뜨리려 했다.
하지만 수비군을 이를 탐지하고 그리스의 불을 활용하며 공격을 저지했다.
또한 몇 척의 로마 측 함선이 금각만을 봉쇄하고 있던 오스만 함대를 돌파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식량을 실어 나르는 데 성공했다.
이를 지켜본 메흐메트 2세는 금각만을 장악하지 못하면 공략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정을 내린다.
군함을 육지로 끌어올려 금각만으로 진입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실행되었고, 오스만 함대는 결국 금각만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미 병력이 부족했던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비군은 금각만 방면까지 병력을 분산시킬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오스만 제국 병사들은 성벽을 넘지 못한 채 쓰러졌다.
공방전은 4월을 지나 5월로 접어들었고,
메흐메트 2세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오스만 제국군은 총공세에 나섰다.
첫 번째 공격은 비정규 보조병
두 번째 공격은 아나톨리아 정규군
세 번째 공격은 정예 예니체리 군단이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비군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속된 공격 속에서 제노바 용병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중상을 입었다.
그는 성벽을 떠나 후방으로 후송되었고,
이 장면은 수비군의 사기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오스만 제국군은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
일부 기록에서는 이 과정에서 성벽의 작은 문이 열려 있었다는 언급도 전해진다.
결국 방어선은 무너졌고, 외성 위에 오스만의 깃발이 꽂혔다.
성문이 돌파되자, 오스만 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안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로마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황제의 상징인 자주색 망토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병사들과 함께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짐의 머리를 받아줄 그리스도인은 없는 것이냐?"
메흐메트 2세는 관례에 따라 사흘간의 약탈을 허용했다.
도시는 순식간에 무질서 속에 빠져들었다.
다만 일부 기록에서는 약탈이 예상보다 일찍 중단되었다는 언급도 전해진다.
도시를 손에 넣은 메흐메트 2세는 이곳을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후 오스만 제국의 중심이 되었고, 훗날 이스탄불이라 불리게 된다.
한때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의 도시는, 이제 또 다른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을 끝으로
천 년 넘게 이어져 온 로마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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